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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사법부가 외면해 온 '가장 보통의 준강간사건'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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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회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21-08-06 17:28 636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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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0.7.7.(화) 오전11시00분

장소 : 대법원 정문 앞

공동주최: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163개단체)

 

사회 : 남성아(천주교성폭력상담소)

○ 경과보고

○ 발언

1. 준강간 사건에서의 법과 현실의 간극 : 정은자(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2. ‘법이 보호할만한 피해자다움’은 없다.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한다

: 조소연(한국성폭력위기센터)

3. 술과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사건의 현실 : 조은희(한국성폭력상담소)

4. 수사·사법기관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 잡아라

: 최나눔(한국여성의전화)

○ 피해자 입장문 대독 : 조서윤숙(사단법인평화의샘)

○ 기자회견문 낭독(한국여성단체연합 김수희,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권현정)

○ 질의응답

 

사건 경과보고 및 공대위 활동보고

피해자: 20대여성

가해자: 클럽에서 만난 20대 남성

조력자: 가해자의 친구 3명, 모텔 직원

피해내용: ① 피해자의 명백한 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에서 준강간피해
(CCTV상 만취하여 두 명의 남성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확인 됨)
② 당일 낮에 깨어난 이후 저항이 있었음에도 강간피해

 

사 건 경 과 : 2017년 5월 5일 서울 외곽에서 피해 발생

2017년 5월 7일 관할경찰서 신고, 진술

2017년 11월 7일 불기소처분(간음유인, 준강간미수, 유사강간, 강간)

2018년 2월 26일 항고기각

2019년 3월 7일 재정신청 일부인용(준강간미수 기소명령)

2019년 7월 25일 1심 국민참여재판 무죄 선고(배심원 평결 유 2: 무 5)

2020년 5월 7일 항소심 무죄 선고

2020년 5월 11일 검찰 상고

2020년 5월 26일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대위 출범 결정

2020년 6월 18일 공대위 1차 회의

2020년 6월 30일 공대위 2차 회의(현재 163개 단체)

 

향후 활동계획:

1.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32개 단체)를 통해 2019년 준강간 사례 조사

기간: 2020년 7월 2일~7월 24일

2. 파기환송 및 정의로운 판결 연서명 탄원서

기간: 2020년 7월 7일~ 7월 24일(필요시 연장)

3. 전문가 의견서 제출

 

 

발언 1. 준강간 사건에서의 법과 현실의 간극

 

-정은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형법 제299조 준강간죄 및 준강제추행죄는 폭행 협박이 없었더라도 심실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경우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과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규정된 법입니다.

 

준강간 사건의 주 쟁점은 첫째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

둘째 피고인이 피해자의 이런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간음할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술 혹은 약물에 만취한 피해자를 강간한 가해자는 전형적으로 피해자의 의식이 멀쩡해 보였다며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하거나,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성폭력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거나, 성폭력 피해 자체를 부정당하고 오히려 역고소에 시달립니다.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준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성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피해자가 동의한 성관계였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술로 인해 블랙아웃(알코올이 임시 기억 저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시켜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 활동을 하는 현상)상태가 되면 자신의 의지나 인식과는 무관한 말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피해자가 어떤 말을 하거나 비틀거리면서도 혼자 걷거나 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었다거나, 성관계에 합의를 했는데 단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가해자들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피해자의 관점으로 가해자와의 관계나 사건의 맥락을 살펴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기반하여 판결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준강간사건의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기억해도, 혹은 기억하지 못해도 피해를 사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악역향을 주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술 취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도 준강간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통념에 기반하여 판결을 내린 것으로, 단지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 상황에 대한 모든 맥락적 논리와 증거들은 무시되고, 오로지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무죄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다움에 부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제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목으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며 성폭력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준강간 사건이 제대로 된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본 사건의 경우처럼 심신상실 및 항거불능 상태의 명백한 증거(cctv 확인)와 일관적이지 않은 가해자의 진술, 비상식적인 정황 등이 증명된 사건조차 무죄가 선고 된다면 추후 그 어떤 준강간 사건의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는 선례를 남기게 되며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될 것입니다.

 

준강간죄의 판단에 있어 법리는 현실과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심신상실의 범위, 항거불능의 상태를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성인지적 관점으로 읽힐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와 상식으로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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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2. ‘법이 보호할만한 피해자다움’ 은 없다.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한다.

 

– 조소연,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사회 각 분야와 전국 도처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적인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수사·재판 과정에서는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맥락 고려’의 중요성이 제기되면서 이를 판결문에 판단기준으로 판시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2차 피해와 피해후유증을 양형판단에 반영하기도 하여 사법부 변화의 흐름을 일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성폭력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과 결과를 보면 여전히 수많은 사건 피해자들에게 고소부터 재판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2019년 검찰청 처분결과를 보면 강간사건의 검찰 기소율은 44.8%로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를 통해 무료법률지원을 했던 준강간 사건의 기소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힘든 기억을 떠올려가며 용기를 내어 고소를 결심하고 가해자 처벌을 호소하지만 검찰은 “법이 보호할만한 피해자다움”의 통념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여전히 절반도 넘는 성폭력 사건을 기소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렵게 기소가 되더라도 가해자 논리를 편드는 무죄판결로 피해자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공동대응중인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는 ‘피해 당시에는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직후 즉시 현장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기까지 2일이 걸렸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불기소처분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에도 “법이 보호할만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재판부에 의해 ‘피해’라는 당사자의 경험이 철저히 삭제되고, 명백한 CCTV자료마저 가해자 논리에 따라 부정된 것입니다.

 

피해자에게는 왜 2일이 지나서야 고소를 했는지를 질문하면서, 왜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피해자가 정식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으며, 왜 그마저도 두 차례나 무죄판결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정당한 호소를 외면했는지, 왜 처음 고소한 날로부터 3년이라는 지난한 시간동안 정의회복을 위해 피해자가 마냥 기다려야만 했는지 대한민국 사법부에 묻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대법원은 이제 상식적이고 공정한 재판으로 피해 당사자와 한국사회의 수많은 준강간 불기소처분 피해자들에게 응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사회 보통의 준강간 사건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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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3. 술과 약물을 이용한 준강간 사건의 현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사건은 상담현장에서 많이 접하고 있는 ‘보통의 준강간’ 사건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18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술과 약물을 매개로 한 성폭력 상담이 전체의 17.6%를 차지합니다. 술을 매개로 한 성폭력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사법부는 범행을 의도하거나 실행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가 피해 이후 피해 상황을 바로 인지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현실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추가적인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통념으로 자신을 검증하기도 합니다. 성폭력 이후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모텔에서 같이 나오거나. 화장을 고치거나. 가해자와 밥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음료를 마시는 등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운 것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심신미약으로 혼란한 피해자의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수사. 재판과정에서는 피해자다움을 의심받게 되거나 가해자의 고의성 판단의 잣대로 적용합니다. 심실상실,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남자 여럿이서 모텔로 옮긴 것 부터가 이미 가해자의 고의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심실상실 상태를 악용한 자신의 행위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심실상실의 상황이 cctv로 명확히 증명되었음에도 피해 이후 가해자가 스스로 강간행위를 중지하였다는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이전에 있었던 강간의 고의는 모두 무시되고 무죄 판결하였습니다. 심신상실이 명확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고의성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까? 가해자가 강간을 하려다 스스로 중지하였다는 중지미수의 판단 또한 준강간 미수를 판단하는 잣대로 타당한지 의심스럽습니다.

 

한 때는 가해자의 음주감경이 통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비동의 간음죄로 강간죄 개정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심실상실이외에 다른 증명이 왜 고려되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법원이 1,2심의 편협한 판단을 바로잡아 더 이상 잘못된 사회적통념이나 피해자다움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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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4. 수사·사법기관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 잡아라

–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게 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녀?”

“남자랑 술 마셨네요? 본인이 술 마시러 갔고, 귀책사유가 있잖아”

 

본 내용은 2017년에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해시태그 캠페인에 참여한 피해자들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들은 증언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나 말고 다른 성폭력 피해자가 생길 것을 막기 위해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내서 사건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수사·사법기관은 끊임없이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며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 사건의 경우 역시 경찰은 “클럽에서 일어난 일이 사건이 되겠어요?”라고 말하며 성폭력 피해를 사소한 일처럼 여기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판검사조차 “클럽에서의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라며 수사에 대한 ‘의지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만취로 항거불능 상태임은 분명하나 준강간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은 배척되고 “모텔에 가기 전 이미 성관계에 동의했다”라는 가해자의 진술은 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 피해였음을 말하고 있음에도 피해자의 말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함께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서 만난 관계는 당연히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라는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통념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수사·사법기관의 이러한 태도는 가해자의 죄를 면해줌으로써 여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하고 확산하여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법적 처벌의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 비난, 해결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편에 서서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수사·사법기관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으십시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문제를 각성하여 반드시 쇄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성폭력 가해자를 명백히 처벌함으로써 이 사회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할 때입니다. 재판부는 성폭력을 고발해 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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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장문

 

약 3년 전, 저는 저와는 무관할 것이라 믿었던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조각난 일상의 파편은 아직 채 붙지 못했고, 끝내지 못한 싸움은 현재까지도 제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없어 신고를 할 수 있을까 망설였던 새벽을, 죄가 없음에도 경찰서 문을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두려움과 수치심을 기억합니다. 사건 관할서로 가기 위해 무려 한 시간 반을 이동하며 느꼈던 복잡한 감정과 혹시 모를 약물 검사를 위해 멀쩡한 머리카락 수십여 개를 뽑았을 때의 고통 또한 기억합니다. CCTV를 확보하기 위해 흐린 기억에 의존해 모텔을 찾았을 때, 영업방해가 된다며 투덜거리던 모텔 주인의 핀잔과 시선을, 그것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던 무력한 나 자신을 기억합니다.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고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법이 가해자를 심판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의 거짓도 없이 수사에 임했습니다. 가해자의 범죄가 용이하도록 도운 친구들과 모텔 주인에게 아무런 죄도 물을 수 없는 것에는 의문이 들었으나, 직접적인 가해자라도 처벌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손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법은, 가해자의 말만을 듣고 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검찰의 불기소 의견과 계속되는 이의신청 기각에 불복해가며 억겁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처음으로 재정신청이 인용되었을 때, 저는 드디어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디케는 끝내 저를 버리더군요.

 

저는 정말 많은 걸 바라지 않았는데, 단지 저의 만취상태를 이용하고 의사에 반하는 행위로 고통을 준 이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주길 바랐을 뿐인데 아무도 저의 호소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본 스트레스로 인한 하혈과 종일 끼니를 걸렀던 나날들, 나의 처신을 탓할지 몰라서, 편견이 두려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보냈던 수많은 자책의 밤들을, 저는 이제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며, 또 보통의 피해자입니다.

성실히 저의 일을 하고, 가끔은 술도 마시고, 친구들과 일상을 즐기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입니다. 이런 저에게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해주는 것은 단순히 제가 운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저의 사건이 가해자같은 남성들의 잘못된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건의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두렵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오히려 제 3자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인면수심의 가해자와 가해자를 도와 성폭력을 방관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의 얼굴을 한 채 사회를 활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섭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 더욱 힘을 내 싸우겠습니다.

저는, 우리들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숨 쉬고 싶습니다.

많은 지지와 연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 7. 7

 

 

피해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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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피해자의 시간은 여전히 2017년 5월 5일이다.

만취한 여성을 상대로 한 조직적 성범죄, 강력히 처벌하라!

 

지난 5월 7일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는 CCTV상으로 피해자의 만취상태가 명백하게 확인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피고인이 만취상태를 이용하여 강간을 하였다는 고의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에서 불기소된 사건을 재정신청까지 한 끝에 기소된 이 사건의 가해자가 처벌받기만을 바라던 피해자의 3년의 기다림은 처참히 무너졌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건은 3년전 2017년 5월 5일로 거슬러간다. 피해자는 친구들과 클럽에서 놀다가 가해자와 합석하여 술을 한잔 마신 후 모든 기억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나체상태로 이미 강간의 흔적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어 더욱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다. 피해자는 빨리 방을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자신의 현재위치를 확인하던 중 다시 잠이 들고 만다. 다시 잠에서 깨어난 피해자는 가해자를 통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아내려 던 과정에서 재강간을 당하게 된다.

 

사건 이틀 후 경찰에 신고를 한 뒤에야 피해자는 가해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고, 가해자 혼자가 아니라 남성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임이 CCTV를 통해 드러났다. 가해자와 그 일행 3명은 만취한 피해자를 홍대 클럽에서 서울 외곽까지 데려갔고, 피해자는 혼자서는 서지도 걷지도 못 하고, 소지품하나 없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짐짝처럼 모텔에 끌려 들어갔다. 모텔 직원은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방을 내어줬다. 가해자와 그 일행, 모텔직원까지 CCTV에 있는 다섯명의 남성들 모두는 늘상 있던 일처럼, 당연한 것처럼 만취한 여성을 모텔방으로 데려가기 위해 서로 조력하며, 가해자를 도왔다. 피해자의 몸이 어떻게 성적대상화 되고 있는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취한 여성의 몸은 그래도 된다’는 가해자 논리, 거기에 부합하여 가해자 논리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사법부의 판단은 공분하지 않을 수 없고, 참담할 뿐이다.

 

우리는 지난 2019년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 클럽을 매개로 한 범죄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 목도하며 경악했다. 그러나 버닝썬 게이트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클럽에서 만취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타겟이 되어 가해자와 그의 조력자들에 의해 성범죄에 이용되었다. 만취한 여성을 상대로 강간하고 촬영하며 범죄를 조장하던 소라넷, 클럽 내에서 조직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성폭력이 벌어지던 버닝썬, 그런 성폭력 상황을 영상으로 찍고 유포하고 시청해오던 웹하드카르텔까지.. 우리 사회는 클럽을 매개로 혹은 만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방관해왔다.

 

이 사건 또한 ‘클럽에서 일어난 일이 사건이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경찰에 의해 조사가 시작되었다. CCTV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만취한 모습은 ‘성관계를 동의한 상태’였고, ‘시체와 성관계하는 것 같아 하지 않았다’는 가해자의 거짓에 의해 변질되었고, 가해자의 범죄를 조력했던 남성들은 ‘동의해서 성관계하러 간다길래 데려다준 것 뿐이다’라며 사건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검찰은 가해자에게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허울뿐인 훈계를 한 뒤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피해자의 항고 및 재정신청으로 다행히 ‘준강간미수’에 대해 기소명령이 내려졌지만 이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과정이었다. 인천지법 형사13부는 법리판단이 쟁점인 1심 재판을 피해자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을 결정하며 검찰이 죄를 묻지 않고 구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백지구형’을 해도 된다고 말하였다. 공판검사는 검찰의 의견은 최종불기소이고, ‘클럽에서의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며 가해자의 범죄를 증명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는 클럽에서 기인하여 만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은 성폭력일리 없다는 편견과 통념에 갇힌 검사, 재판부, 배심원들로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절망할 수 밖에 없었고 1심 재판은 사건의 실체는 들여다보지도 못 한 채 배심원들의 5:2 무죄평결을 그대로 반영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새로운 증거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객관적으로 만취에 의한 심신상실이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가해자에게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증거조사와 피고인 신문을 통해 가해자의 진술이 모순되고 경험칙상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볼 수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모텔에 가기 전 이미 성관계에 동의했었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만취한 여성을 상대로 네 명의 남성이 조력하고, 모텔직원의 방관까지 더해져 범죄가 벌어졌지만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2020년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지난 몇 년 우리 사회는 권력형 성폭력, 문화계 성폭력, 디지털성폭력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연대하고 지지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가 만취하였거나, 클럽을 매개로 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인식도, 처벌도 묘연하다. 피해자가 만취하였다면, 클럽에서 만난 남녀라면, 유흥업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성관계에 동의할 것이라는 왜곡된 통념과 편견의 결과이며 수사. 사법체계도 공범이다.

 

피해자의 시간은 아직도 2017년 5월 5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고 사법부가 멈춰진 그 시간이 다시 시작되도록 바꿔야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만취하여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을 편견과 통념없이 면밀히 검토하길 바란다. 만취상태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 범죄가 이루어지도록 조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엄중히 조사하고 처벌하길 바란다. 합리적 의심이라는 명목으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대신 성폭력 피해자의 특성과 관점을 고려하여 사건의 실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가해자는 처벌받을 수 있는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사법부가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대법원이 앞선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잘못을 되짚고, 정의롭고 상식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라 기대한다. 그동안 사법부가 철저히 외면해온 수많은 준강간 사건의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응답하길 바란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이제 2020년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본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할 것을 촉구한다.

 

2020년 7월 7일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163개단체)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32개소/가족과 성·건강 아동청소년상담소, 벧엘케어상담소, 서초성폭력상담소, 이레성폭력상담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한국여성상담센터,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휴샘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운영상담센터, 인천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 부설 가정‧성폭력상담소, 강화여성의전화 부설 강화여성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인천지회 성폭력상담소, 광명YWCA 성폭력상담소,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부천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부천청소년성폭력상담소, 사람과평화 부설 용인성폭력상담소, 성남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수원여성의전화 부설 통합상담소, 씨알여성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안산 YWCA 여성과성상담소, 안성성교육성폭력상담센터, 안양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평택성폭력상담소, 하남YWCA 부설 성폭력상담소, 행가래로의왕 가정‧성상담소, 김포여성상담센터,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부설 고양성폭력상담소, 남양주가정과성상담소, 동두천성폭력상담소,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부설 파주성폭력상담소 ‘함께’, 포천 가족성상담센터, 연천행복뜰상담소, 강원여성가족지원센터 부설 춘천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속초여성인권센터 부설 속초성폭력상담소, 영월성폭력상담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강릉지부 부설 강릉가정폭력ㆍ성폭력상담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동해지부 부설 동해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함께하는공동체 부설 원주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정선아라리가족성상담소, 세종YWCA성인권상담센터, 가정을건강하게하는시민모임태안지부 태안군성인권상담센터, 법률구조법인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아산지부아산성상담지원센터, 로뎀나무상담지원센터, 천안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충남성폭력상담소, 홍성성가정폭력통합상담소, 부여성폭력상담소, 서천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충북·세종지회 청주성폭력상담소, 제천성폭력상담소, 청주여성의전화 부설 청주성폭력상담소,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 충주생명의전화 부설 충주성폭력상담소, 당진 가족성통합 상담센터, 대전YWCA 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 대전충남지회 대전성폭력상담소, 나주여성상담센터, 담양인권지원상담소, 무안여성상담센터, 함평보두마상담센터, 여수성폭력상담소, 전남성폭력상담소, 해남성폭력상담소, 행복누리 부설 목포여성상담센터, 군산성폭력상담소, 성폭력예방치료센터 김제지부 성폭력상담소,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부설 성폭력상담소, 성폭력예방치료센터정읍지부 성폭력상담소, 익산성폭력상담소·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광주여성의전화 부설광주여성인권상담소 바램,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인구협회 광주성폭력상담소, 제주여성인권연대 부설 제주여성상담소, 제주YWCA통합상담소,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ㆍ경북지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경주다움성폭력상담센터, 구미여성종합상담소, 로뎀성폭력상담소, 새경산성폭력상담소, 칠곡종합상담센타, 포항여성회 부설경북여성통합상담소, 필그림가정복지통합상담소, 한마음상담소, 거창성․가족상담소, 경남여성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김해성폭력상담소, 사천성가족상담센터, 진주성폭력상담소, 진해여성의전화 부설 진해성폭력상담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 창녕성.건강가정상담소, 창원여성의전화 부설 창원성폭력상담소, 통영YWCA성폭력상담소, 함안 성가족상담소, 하동성가족상담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설 부산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상담센터, 기장열린상담소, 다함께성가정상담센터,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 성폭력상담소, 생명의전화울산지부 부설 남구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울산지부 부설 울산성폭력상담소, 울산동구 가정.성폭력 통합상담소, 밀양시성가족상담소, 한국여성복지상담협회 부설 꿈누리 여성장애인상담소,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한사회장애인성폭력 상담센터, 인천광역시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장애인성폭력상담소, 오내친구장애인성폭력상담소, 경원사회복지회 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의정부장애인성폭력상담소,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부설 대전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 충남지체장애인협회 부설 장애인성폭력아산상담소, 충남장애인복지정보화협회 부설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청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광주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제주특별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 부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부설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경북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국제문화교육진흥원 영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경남여성장애인연대 부설 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성·가정통합상담소, 울산장애인인권복지협회 부설 울산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전남여성장애인연대 부설 목포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행복나눔지원센터 부설 새벽이슬장애인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새움터,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사)평화의샘,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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