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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방청 및 기자회견]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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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회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23-02-13 11:11 592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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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10.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기자회견
5년을 기다렸다! 서울고등법원의 유죄 판결, 해군의 성평등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 일시: 2023년 2월 10일(금) 오후 2시
▣ 장소: 서울법원종합청사/서울고등법원 동문 앞 (교대역 11번 출구 방면)
▣ 주관, 주최: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 순서
사회: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대리인 입장: 조윤희 (공동변호인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공동대책위원회 입장: 김지윤 (녹색당 대외협력국장)
군의 과제, 성폭력 생존 여군 일상회복: 최희봉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
피해자 입장 대독: 윤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기자회견문 낭독: 김남영 (진보당 인권위원장)
[기자회견문]
서울고등법원의 유죄 판결, 해군의 성평등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서울고등법원이 해군 여군을 강간한 가해자 상관에 유죄를 선고했다. 성소수자 여군인 피해자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0년 두 명의 남성해군 간부에 의해 성폭력을 겪었고, 2017년부터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1심 유죄, 2심 무죄,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왔다. 이번 유죄 판결은 긴 싸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이다.
지금까지 가해자들은 단 한 번도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왜곡된 증언을 하고 있다거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성적 호감을 품고 있었다며 거짓 주장을 일삼았고, 강제추행을 ‘묵시적 합의’에 의한 접촉이라고 주장하며 폭력의 본질을 흐렸다. 성폭력을 부인한 것은 가해자뿐만이 아니다. 고등군사법원은 군대 내부 위계의 존재, 함정 내 유일한 여군이자 성소수자였던 피해자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폭행 또는 협박을 입증할 수 없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두 명의 가해자 중 첫 번째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두 번째 가해자에 대해서만 파기환송을 결정하는 반쪽짜리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지난하고 불합리한 재판의 과정은 사법정의를 무너뜨리고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는 시간이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유죄 판결은 그동안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준 2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성폭력 사실과 그로 인한 피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단은 피해자가 생존자로서 회복하고, 해군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군대 내의 성평등을 고대해왔던, 더 나아가 우리사회의 성평등과 법적 정의를 바래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승리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206,477명, 대법원 판결을 촉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한 12,066명, 대법원 파기환송 요청 탄원서에 서명한 8,666명과 1,652명, 파기환송심의 유죄 판결 요청 탄원서에 서명한 581명이 바라왔던 결과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법원이 앞으로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식적인 판결을 이어나가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해군 내 성평등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2023년 1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의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대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금 이 시점에 유엔 인권이사회가 특별히 군대를 지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성폭력 중 세간에 알려진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2021년 공군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알려졌듯이 군대조직 내부에서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은폐되고, 피해자는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해군을 비롯한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군대 내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또한 그에 앞서 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군사 문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이 피해자가 오랜 시간 고통과 부정의한 법적 절차에 갇히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롭고 성평등한 군대 문화를 위한 반성폭력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게시된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간부를 처벌해 주십시오” 국민청원은 2018년 11월 9일 청원을 시작하여, 2018년 12월 9일 206,277명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답변을 얻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요청하는 탄원서는 2019년 11월1월까지 866명의 서명을 받아 대법원에 제출했고, 이후 추가로 서명한 1652명의 탄원서를 22월 3월 21일에 제출했다
2023.2.10.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언문 및 기자회견문 전문]
1. 파기환송심 판결요지
: 이도경변호사(피해자공동변호인단,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변호사)
오늘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8년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진술의 신빙성과 관련하여, 파기환송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단계부터 당심(파기환송심)에 이르기까지 범죄행위 전후에 관한 주요한 부분이 일관적이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요청에 의해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원치않은 성관계로 임신중절수술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아니하였던점, 동성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던 점, 피고인이 20살 이상 많은 남성이었던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변소는 경험칙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폭행과 강간의 고의에 관하여, 이 사건 범행이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점, 피고인은 함장이었고 피해자는 그 함정에서 근무중이던 군인이었기에 피고인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였던 점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충분히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만한 유형력의 행사였고, 피고인은 그러한 피해자의 상태에 편승하여 범행을 했기에 고의도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상해와 인과관계에 관하여, 1심부터 파기환송심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전문의 3명이 모두 공통적으로 피해자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생했다고 진술하였고, 그러한 전문가들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있다고 보이는 점, 피고인측의 신청으로 증언한 심리전문가 역시 정신과 전문의가 오진을 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진술하였고, 피해자에 대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자료에서 특별히 잘못된 것을 발견치 못하였다고 한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병하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로 임신한 후 또 다시 강간을 당한 것은 큰 충격으로 피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었을 것이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 과거 우울증이 있던 것이 강간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발병원인으로 볼수도 없는 점, 피해자가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볼수도 없는 점을 들어 피고인의 범죄행위와 피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대리인 입장
: 조윤희 (피해자공동변호인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오늘, 서울고등법원은 성소수자 해군을 성폭행한 함장 김모 대령에게 군인등강간치상의 징역 8년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처럼 당연한 판결을 받기 위해 피해자가 5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것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법원이 최종적으로 실체적 법정의를 바로세우며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판결을 선고하였기에, 피해자의 대리인단은 이번 판결을 적극 환영합니다.
작년 3월,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고,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한 강간 사실과 그에 관한 피고인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강간으로 인한 상해 결과의 발생 여부에 관해 나아가 심리⋅판단하지 않은 것은 군인등강간치상죄의 폭행,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파기환송심은 이와 같은 대법원 판단에 기속되므로, 강간사실 및 피고인의 고의는 이 법원의 판단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고, 군인등강간치상죄에 있어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해 겪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가 강간으로 인한 상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을 심리, 판단하여야 했습니다.
피해자는 이 사건 강간 피해 및 이로 인한 심리적 외상을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진술하였으며, 이 사건 1심, 2심에서 여러 정신과 전문의들은 PTSD란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에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서, 피해자를 진찰한 결과, 피해자가 이 사건 강간 피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게 되었다고 판단하였고, 이후 당심에서 위 진찰기록을 검토한 정신과 전문의 역시 이러한 진단내용이 타당하며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군인등강간치상 범행사실은 자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마지막까지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면서, 이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과거 병원진료기록을 공개하고, 피해자가 정신질환으로 인해 허위의 강간 피해를 진술하였다고 주장하는 등 피고인의 방어권을 현저히 일탈하여 피해자에게 중대한 고통을 주는 2차 가해를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 및 권리 구제를 위한 공동체적 의무가 있음을 고려하면, 사법기관 역시 피고인의 법적 권리라는 탈을 쓰고 자행되는 피해자에 대한 폭력을 저지하여야 하며, 피고인의 2차 가해를 중요한 양형 사유로 반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말의 반성 없이 2차 가해를 지속하였던 피고인을 엄단하는 이번 판결은 응당하고 정의로운 판결이라 할 것인바, 이번 판결이 피해자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현재 싸우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3. 공동대책위원회 입장
: 김지윤 (녹색당 대외협력국장)
오늘 서울고등법원은 고등군사법원의 비상식적인 무죄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8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작년부터 시행된 군사법원법 개정안으로 성폭력 사건이 군사법원에서 민간법원으로 이양된 후, 이끌어낸 상식적인 결과입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많은 시민들이 이 사건의 유죄 판결을 촉구하며 공대위와 함께 방청 연대, 시민탄원서 연명에 참여했습니다. 오늘의 판결은 성평등한 군 조직을 기대하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판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심과 똑같은, 이 상식적인 판결을 얻기 위한 5년 반이라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및 협박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여 두 피고인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판결 이후로 결성된 공대위(현 9개 단위) 및 변호인단은 2심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촉구하기 위해 토론회를 비롯하여 릴레이의견서, 쟁점 간담회, 언론 기고, 기자회견, 시민탄원서 조직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대법원은 사건을 3년 반 동안 계류시켰고, 이에 공대위는 대법원의 불합리한 선고 지연이 피해자의 자기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하고, UN 특별보고관에 법정 의견서 제출 및 한국 대법원에 심리 개시 촉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직속상관 피고인에게는 상고기각, 함장 피고인에게는 파기환송이라는 반쪽짜리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파기환송심 진행과정에서 피고인 측은 피해자의 과거 진료기록을 비전문적으로 해석하며 피해자를 공격하고, 법정에서 변론을 가장한 모욕성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적반하장과 지난한 시간 속에서 피해자는 포기하지 않고 피고인의 반복되는 주장에 대응하고 꿋꿋이 버티며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오늘에서야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법적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두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이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자체뿐 아니라 법적 대응을 하며 겪은 갖은 2차 피해로 긴 시간 심리적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의 형사 유죄 판결이 민사소송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피해자가 합당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유죄 판결은 끝이 아닌 성평등한 군대를 향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발생 후 신고 의향을 묻는 질문에 ‘보고 또는 신고하는 방안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럴 계획도 없다’는 답변 비율이 47.1%로 가장 많았고, ‘고민은 했지만 신고를 포기했다’는 응답은 33.2%였습니다. 위계서열, 집단주의 문화가 강고한 군 조직에서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는 안전하게 피해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 있게 신고하더라도 피해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2차 피해와 조직의 은폐입니다. 이미 우리는 2021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공군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한 수많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군 조직의 미흡한 대처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와 부당한 판결은 없어야 합니다. 피해자는 피해를 안전하게 말하고 신고한 이후에도 원하는만큼 군인으로서 복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폭력은 조직 보위의 문제가 아닌 군인의 인권문제로 다뤄져야 하고 여군들은 객체화된 존재가 아닌, 대등한 동료로 대우받아야 합니다. 공대위를 비롯한 시민들은 앞으로도 국방부와 군 조직, 법원을 지켜볼 것이며 오늘의 성폭력 유죄 판결이 정의로운 판단이 상식이 되는, 성평등한 군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4. 군의 과제, 성폭력 생존 여군 일상회복
: 최희봉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
사건이 발생하고 8년, 재판이 시작되고 5년, 더해서 13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오늘 대법원 파기 환송심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공격하고 사건을 왜곡하는 2차 피해가 난무하는 재판의 시간을 김하나 소령(가명)은 꿋꿋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많은 여군들이 피해를 입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군의 현실을 고려할 때, 중도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용기에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가해자인 직속상관 포술장이 대법원에서 2심 무죄 유지를 받은 반쪽짜리 재판 결과로 인해 김하나 소령이 감수해야 할 분노와 고통을 생각하면 여군 선배로서 심히 우려가 됩니다. 김하나 소령이 앞으로 군 조직에서 맞닥뜨릴 문제를 최소화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자 군의 이후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범죄 피해 여군들의 끊이지 않는 자해, 일상회복의 어려움: 피해 여군의 일상회복은 마치 전장에 나간 군인처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지뢰가 터지는 긴박한 문제임을 군, 그리고 부대원들은 직시해야 합니다. 재판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한 피해자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가장 당황하는 것은 부대의 불편한 분위기입니다. 가해자들이 의도적으로 전파하는 피해 여군에 대한 평판, 특히 성범죄 원인 제공자라니 피해자를 건드리면 고소 당한다는 등 왜곡된 소문은 장벽이 되어 그녀들을 고립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부당한 고립과 따돌림은 단결이 특징인 군에서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기에 평안한 일상을 꿈꾸는 피해 생존자들에게 치명적 상처가 됩니다. 이러한 2차 피해는 눈에 보이는 행위가 아니다 보니 신고하거나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일상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괴롭히는 조직 내 분위기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군을 떠나거나 심지어 자신을 해치기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간 재판 과정에서 김하나 소령에게 2차 피해를 서슴지 않았던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행태를 보았을 때, 김하나 소령이 이후 군에서 겪을 보이지 않는 압박과 고립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측되는 바입니다.
가해자 징계에 실패한 군, 그들에게 피해자 공격의 기회 제공한 꼴: 특히, 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재판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미루었고, 대법원 판결 지연으로 인한 시효 문제로 가해자들은 그대로 전역하였습니다. 법원의 사법체계가 형사, 민사 등을 다투는 데 집중하는데 비해 징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한 부대 지휘관이 주도하여 군인기본법과 부대관리훈령에 입각하여 사건 당시 가해자 직책에 해당되는 권한에 대한 책임까지 묻는 군의 근원적인 정의구현 체제입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무죄가 선고된 2심에서 조차도 성폭력 행위 만큼은 확인되었을 정도로 명확한 범죄가 있었으므로 법원 판결 이전에 징계는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직속상관이자 지휘관이었던 가해자들의 직책이 가진 권한을 고려할 때 징계를 통해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이며 책임이 있음을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피한 가해자들은 재판 결과를 악용하여 피해자 원인 제공론을 퍼뜨리게 되어도 부대원들은 ‘그런가 보다’오해할 여지가 큽니다.
결국 가해자들이 전역 후에도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가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군에서 징계도 받지 않았으므로, 완전한 무죄’라는 길 입니다.
낙인 효과, 피해자 비밀보호 미명 하에 커지는 눈덩이 같은 소문: 성범죄 피해 여군들은 부대관리훈령 제250조의3 피해자 보호, 2차 피해 방지 및 비밀유지의 의무에 따라 군에서 보호받게 됩니다. 가해자들이 다양한 군의 인맥과 커뮤니티를 활용해서 잘못된 소문을 퍼뜨려도, 동료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아는 부대원이라 할 지라도 그 내용을 말하면 비밀유지 의무를 어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사건이 왜곡되는 배경이 되고, 잘못된 소문은 눈덩이처럼 굴러갑니다.
그리고 이 눈덩이는‘피해자’낙인을 강화시켜서, 일상의 임무 수행 중에도 끊임없이 편견으로 작동합니다. 근무를 잘해도 ‘피해자 답지 않다’라고 진정한 피해자임을 의심받거나, 정기 인사임에도‘피해자 보호 인사’라는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로 무장된 ‘나쁜 피해자’낙인은 피해자가 하루하루 온전한 군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파괴합니다.
피해자 일상회복을 위한 군의 조직적 접근, 현장 전우애: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매일 만나고 함께 생활하는 부대의 지휘관과 동료들의 지원입니다. 특히, 해군 함정이나 기지에서 근무하는 피해자의 경우는 24시간 얼굴을 마주하는 부대원들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부대원들이 피해자를 따돌리거나 정상적으로 임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무력화 됩니다.
이처럼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돕는 가장 중요한 조력자는 현장의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피끓는 전우애라는 사실을 군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혹한 피해와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그녀의 용기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군은 조직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정비하고 가동해서, 부대원들의 전우애가 성공적으로 발휘되어 피해 여군이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군을 이탈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맺음말: 피해 발생 후 8년, 신고 후 재판 과정 5년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싸워 온 우리 김하나 소령의 행적이 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용기를 주기를 기대하면서, 군이 이제는 그녀의 일상 회복을 도와 자랑스러운 군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를 촉구합니다.
5. 피해자 입장
: 대독 _ 윤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2023년 2월 10일, 입대한 지 5,080일. 감사하게도 저는 오늘도 대한민국의 해군 장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군인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두 가해자 그리고 예상치 못한 2차 피해의 순간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저를 좀먹고, 그런 저를 채워주는 것은 주어진 과업들을 해내는 것 이라 개인 생활 없이 일에만 매진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인으로 근무하는 한 조직도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어느 지역과 부대에서 어떤 직책으로 근무하고, 연락처는 무엇인지 누구나 알 수 있기에 오늘의 선고 결과와는 무관하게 저는 여전히 그들이 두렵습니다. 너무나도 바랐던 결과이지만 2010년 사건들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의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악랄함으로 비추어볼 때 오늘의 결과로 제게 또 어떠한 보복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법원의 판단처럼 두 가해자 중 다른 한 명 역시 유죄를 인정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판결을 기약 없이 기다리기도 힘들었지만, 헤아릴 수없이 많은 강제추행과 원치 않은 성교로 나를 범한 자가 위력에 의한 간음은 될 수 있으나 강간은 아니라는 취지로 무죄로 풀려난 이후 하루하루 버텨온 날들이 무너질 만큼 참으로 견디기가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판결은 지휘관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부하를 이용하고서도 여전히 참회하지 않는 자에게 마땅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이어질 민사재판에도 진실을 부정하며 결코 참회란 찾아볼 수 없는 가해자들 모두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이 내려지길, 그리고 그 결과가 아직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아픔을 견뎌내고 있을 피해자분들에게 의미 있는 선례가 되길 바랍니다.
일일이 이름을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참 많은 분께서 제가 이 시간까지 살아올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형사/민사 소송을 대리해 진행해주고 계신 변호사분들, 나라 안팎에서 힘과 지혜를 모아주신 공대위 활동가분들,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지지해주신 현역/예비역/퇴역 선ㆍ후배분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영영 떨치지 못하는, 마음이 어딘가 고장 나버린 인간이라고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힘과 용기를 실어 줄 수 있는 생존자로, 그리고 지킬 수 있는 조국이 있다는 것에 행복한 군인으로서 기꺼이 헌신하며 계속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겠습니다. 도움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사진 출처: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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