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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두고 ‘몹쓸 짓’, 가해자는 ‘늑대’…2차 가해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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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사회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작성일21-08-09 10:50 조회7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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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언어로 제목 뽑고

피해자 비인격화하는 표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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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이 오히려 피해자를 울리는 2차 가해자가 되고 있다.   ©이재원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이 오히려 피해자를 울리는 2차 가해자가 되고 있다. 엄연한 범죄인 성범죄를 ‘몹쓸 짓’으로 행위 자체의 격하하거나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사를 생산하고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서 성폭력 가해자의 시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의 이 같은 보도 행태는 성폭력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친딸에 몹쓸 짓…인면수심 40대 징역 12년’ ‘다문화 9세 소녀에 몹쓸짓한 어른들’ ‘전·현 수영 국가대표 황당한 몹쓸짓 릴레이’

모두 최근 일간지에 실린 성폭력 범죄 보도 기사 제목들이다. 제목만 봐서는 성폭력 범죄를 연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구글 뉴스 카테고리에서 ‘몹쓸 짓’으로 검색하면, 성폭력 범죄에 관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몹쓸 짓’은 ‘악독하고 고약한 짓’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표현이다. 성폭력 범죄를 몹쓸 짓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폭력의 심각성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축소하고 희석하는 행위인 셈이다.

성폭력 범죄 언론 보도에서 자주 쓰이는 또 다른 표현은 ‘일탈’이다. 한 통신사는 칠레에서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남성 외교관 관련해서 ‘해외근무 외교관 일탈 어떻게 막나’라고 기사제목을 달았다. 공직자의 잇따른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女속옷 훔치고 男목욕탕 도.촬…공직 일탈에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성폭력 보도에선 성추행을 ‘검은 손길’로, 가해자를 ‘늑대’, ‘바바리맨’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반영된 기사도 많다. ‘성폭력범 94%가 정신질환…30%는 사이코패스’ 기사 내용은 2011년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인 성범죄자 50명을 조사한 결과 94%가 정신질환자라는 내용이다. 치료감호소가 정신질환이 있는 범법자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지만, 기사제목만 보면 모든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성폭력 범죄자라고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성폭력 언론보도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선정적인 묘사와 자극적 단어를 사용해 성폭력 사건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하며 범죄를 ‘흥밋거리’로 취급한다. 삽화나 상황 재연을 통해 화면을 선정적으로 구성해 성범죄를 ‘소비’했다. 또 여성 피해자는 ‘OO녀’로 호명하고 사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을 사건명으로 대체하는 등 ‘대상화’한다. 피해자에 책임을 지우는 언론의 행태도 문제다. 기사에서 피해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을 밝히거나 관련 이미지로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마치 여성의 신체 노출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한 주간지가 쓴 ‘지적장애 여성 성추행 40대 입건 “단둘이 있으니 갑자기 욕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반영한 대표 사례다. 최근 장애인 성폭력 범죄 언론보도를 모니터링한 장애여성공감은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라는 왜곡된 통념을 바탕으로 성폭력은 성욕을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또는 순간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용인 될 수 있다고 믿는 남성젠더의 언사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사례”라며 “이를 통해 성폭력은 참을 수 없는 성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통념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모 경제지는 한 초등학교 학부형과 주민이 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학부형이 집단강간’이라는 기사제목을 달았다. 비난이 쏟아지자 신문사는 다음 날 기사를 삭제하고 공식 사과문을 냈다. 소위 ‘잘 팔린다’는 이유로 선정적으로 피해자와 범죄 사실을 소비해 온 언론의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사건 자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기보다는 성폭력 예방과 해결에 집중하고, 피해자의 관점에 입각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2014년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제작해 배포한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에는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이 상세히 담겨 있다. 3항을 보면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발표한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도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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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호 [사회] (2016-12-26)
이하나 기자 (lhn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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